인기작들을 분석하면서 인기요소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정리하고자 한다.
아래에 내가 정리하는 내용에 관련된 팩트나 논문이나 유효하게 집계된 데이터는 찾지 못했다. 따라서 아래의 내용, 근거와 결론 모두 뇌피셜이며 요즘 작품들은 아래의 모든 요소들을 융복합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정리된 내용이 작품마다 맞기도 틀리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많은 작품을 분석하여 이 게시글에 최대한 보편적인 결론을 내려고 했다.
다양한 게시글, 영상, 실제 작품들의 내용과 댓글들을 기반으로 정리해본다.
이건 하루만에 완성된 게시글이 아니다. 굉장히 장문이므로 이러한 분석글이 필요한 사람들만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검색은 F3을 누르고 가장 앞에 Z를 붙인 후 아래에 있는 키워드 중 하나를 쓰면 되겠다.(ex: Z회귀)
모바일의 경우 브라우저 우측 ***을 눌러서 페이지에서 찾기를 실행하면 된다.
키워드: 회귀, 빙의, 환생, 시스템, 상태창, 스테이터스, 아카데미, 게이트, 망나니, 마교, 천마, 재벌
Z회귀
'독자나 작가는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
주인공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어떤 시점에서 작품이 전개를 시작한다. 이때 현실세계든 판타지세계든 세계 간의 이동은 없다. 정말로 시간만 돌려서 시작하는 것이다. 주인공 외에 다른 인물들도 회귀하는 특이 케이스가 있지만 이건 제외한다. 주인공만 회귀한 상태에서 작품의 도입부가 이루어진다는 가정 하에 분석하겠다.
- [순기능: 역시 주인공은 다 알고 있다.]
주인공은 독자의 분신이다. 독자의 감정이입의 대상이며,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도자다.
주인공만 회귀한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인물들과 주인공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 격차가 생긴다. 주인공은 미래의 사건, 상황, 인과관계를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매우 유리한 위치에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다. 따라서 주인공이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상황이나 다른 인물들에게 끌려다니지 않으며, 설령 끌려다니는 장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주인공의 큰 그림 중 일부라고 여길 수 있다. 독자들은 고구마에 대한 면역이 다소 생기며 사이다는 거의 그대로 유지된다.
간혹 주인공이 독자들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더라도, 주인공은 미래의 사건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그 행동에 설득력이 부여된다. 주인공의 행동 A를 이해할 수 없어도 결과 A를 만들고, 각각의 행동과 결과 사이에 발생하는 일들을 삽입하여 아주 쉽게 하나의 짧은 스토리를 이어갈 수 있다. 어차피 독자들은 몰라도 주인공은 전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핵심이다.
단, 회귀한 주인공의 행동으로 인해 과거가 바뀌게 된다면 주인공이 알고 있던 미래도 바뀌는 법이다. 작가는 이러한 변수로 주인공의 파워 밸런스를 조절하고 독자들에게 서스펜스&위기감을 선사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조차 주인공이 극복했을 때 독자들의 대리만족감은 더욱 높아진다. 자세한 것은 역기능에서 설명하겠다.
결국 핵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 '시간을 되돌려서 잘못된 선택을 고치고 싶다.'를 주인공에게 투영한 것이다.
따라서 회귀로 시작하는 작품은 독자들의 욕망을 투영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기대감을 주고, 동시에 회귀한 직후 주인공이 좋지 않게 구르더라도 그로 인하여 다가오는 고구마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진통제가 되며, 주인공 중심으로 흘러가는 작품 전체에 시작부터 끝까지 매우 강력한 당위성&설득력&목표의식을 심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역기능: 그런데 어차피 주인공은 다 알고 있다.]
주인공이 갖고 있는 미래에 대한 정보는 가히 비대칭 전력이다. 아무리 강대한 적, 아무리 교활한 악역이라도 웬만해선 주인공의 손바닥 위다. 주인공의 지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주인공은 초반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충분하고 효율적인 준비를 할 기회가 있으며, 주인공의 적들이 초반에 아무리 교활할지라도 그것은 이미 주인공이 겪어본 패턴이기 때문에 극복하는 것이 매우 당연하다. 즉, 주인공의 극복이 초반에는 사이다가 되지만 이후에는 주인공의 연전연승이 매우 당연한 기정사실이 되어 버린다는 고질적 문제점이다.
도입부부터 초반 전개 속 몇 번의 사건들을 주인공이 멋지게 이겨내더라도 그러한 패턴이 반복되면 독자는 지루함을 느낀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주인공에 의한 사이다 전개 반복 -> 즐거움 -> 지루함
주인공에게 위기(고구마)를 부여 -> 주인공이 극복할 것이라는 기대
주인공에게 위기 부여&사이다 전개 반복 -> 어차피 주인공이 극복할 것이라는 예상 -> 고구마, 지루함
위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장치로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보편적이었다.
1. 주인공의 행동이 불러 일으킨 나비효과로 인해, 전개가 진행될수록 주인공의 의도와 맞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것으로 인한 고구마는 곧 주인공의 극복으로 이어진다. 회귀에 대한 메리트가 사라졌을 때 주인공은 이미 회귀 이전의 시간축보다 더 뛰어난 상태가 되는 것이다.
2. 도중에 다른 회귀자가 난입하거나, 원래 있었던 다른 회귀자의 존재가 드러난다. 이로 인하여 주인공만이 가지고 있던 정보격차는 순식간에 희석되고 새로이 독자들에게 알려진 회귀자가 위기감&새로운 목표의식을 일으키는 장치가 된다. 다만 주인공만의 이점이 사라지는 것을 심리적으로 달갑지 않게 여기는 독자들도 적지 않은 편이라, 새로운 회귀자가 주인공에게 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 독자들에게 필요 이상의 미움(이 또한 고구마 감정)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주인공의 회귀 메리트에 대항하며 가장 부합할 수 있는 변수는 누가 뭐래도 다른 회귀자의 존재일 것이다.
3. 정보격차가 있어도 압도적으로 강한 적수가 있다. 이 적수가 너무 강한 경우엔 주인공이 회귀를 여러 차례하거나 이미 여러 차례 한 상황이 부여되기도 한다. 따라서 정보격차라는 주인공만의 이점이 그렇게 치트키처럼 느껴지지 않고, 독자들은 주인공과 함께 위기감을 느끼며 극복의지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했을 때 대리만족한다.
4. 파멸이 예정된 미래다. 물론 말만 그렇고 이 또한 주인공이 어떻게든 극복하여(혹은 어찌저찌 의도치 않게) 세계나 자신의 엔딩을 바꾼다. 그래도 파멸이 예정되었다는 설정은 엔딩 전까지 지속적으로, 다양한 부가요소로 주인공을 압박하는 장치가 된다.
Z빙의&Z환생
'독자나 작가는 다른 세계의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
'독자나 작가는 누군가를 보며 내가 쟤라면 어떨까, 상상한 적이 있다.'
주인공이 (대체로) 판타지세계&이세계&게임세계 등 현실이 아닌 어딘가의 어떤 인물의 정신을 대체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이때 주인공의 정신이 들어간 육체(인물)은 굉장히 곤경에 처한 상황이거나, 주변으로부터 저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간혹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종의 육체에 빙의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도 예외 없이 해당 육체는 앞으로 굉장한 개선과 성장이 필요한 상황이다. 다만 완전히 다른 생물종이 되는 경우는 환생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주인공의 빙의 대상이 인외 생물종이라면 정말로 게임 같은 느낌을 살리기 위해 '시스템'이라는 장치를 혼합하기도 한다.
- [순기능: 주인공은 현대인으로서 독자들을 대신하는 게임 캐릭터 역할을 할 수 있다.]
주인공은 곤경에 처한 상황이나 저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자신의 힘으로 상황을 개선해간다. 이때 독자들은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런데 이걸 빙의&환생만의 이점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주인공은 현대인의 지식과 감수성을 가진 인물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빙의한 육체의 상황은 현대인의 지식이 제법 유효하게 먹히거나, 주인공만의 능력(지성, 전문분야, 이능력&시스템 상 이점)이 유효하게 먹히는 상황이거나, 현대인(주인공)의 감수성이 유효하게 먹히는 상황이다.
결국 빙의 이후 주인공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주인공 주변에서의 평가가 점점 높아진다는 것이다.(그 평가는 존경이 될 수도 경외가 될 수도 있다.)
- [역기능: 오히려 작위적이고 작가 편의적이라는 비판, 새로운 생물종&다른 세계의 인물에 들어간 현대인의 감성이 낳는 괴리감과 거부감]
굳이 오히려라고 표현한 이유는, 주인공의 빙의&환생 대상이 되는 세계와 환경이 거의 100% 작가의 맘대로이기 때문이다.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고 작가의 맘대로 구축한 세계, 설정 등은 작가가 어떤 식으로 전개를 이어가든 설정에 한해서는 거의 100%의 개연성을 지켜주지만 반대로 이러한 것이 위와 같은 비판을 낳는 것이다. 또 작가의 설정이 너무 커지거나, 설정이 크지 않더라도 작가 본인이 이러한 설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면 독자들의 비판은 다른 장르보다 더욱 더 커진다.
그리고 너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버리면 설명할 것이 많아서, 현실에 있는 것들을 벤치마킹하기도 한다. 현실과 작중 세계에 유사점을 두어서 설명을 줄이고 전개에 집중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과 유사점이 있는 세계에서 현실의 고증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면(예를 들면 남작이 백작을 하대한다거나, 고블린이 빨간색이라던가.) 이 역시 다른 장르보다 반발이 거세진다.
또한 빙의 대상이 악독해야 하는 직업이거나 상황에 처했거나 그러한 생물종인데, 현대인의 감수성을 가진 주인공이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면 사이다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몰매를 맞는다. 반대로 주인공이 거부감 없이 악독하게 행동하면 윤리적인 감수성이 큰 독자들에게 몰매를 맞는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악독하게 행동하면 신파&쿨병&고구마 등 다양한 방식으로 몰매를 맞는다.
그래서 빙의와 환생이라는 건 절대적으로는 난이도가 낮은 작품이지만, 회귀보다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장르라고 생각한다. 작품의 세계관, 빙의 대상의 상황, 빙의 대상의 능력이나 직업, 다른 생물종이라면 그 생물종의 보편적인 특징과 성향, 그리고 주인공의 성장을 위한 시스템, 이능력, 지식 등 굉장히 광범위한 부분에서 조율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무작정 빙의를 시작하며 작품을 전개하기 전에, 위와 같은 것들을 제대로 조율하여 세계관과 상황을 짜놓는다면 빙의&환생은 회귀보다 변칙적이고 예측하기 어려운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극초반의 도입만 넘어서면 이후 독자들의 머릿속에 육성 게임, 경영 게임, 전략시뮬레이션, 연애시뮬레이션 등을 작가의 뜻대로 재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Z시스템&Z상태창&Z스테이터스
'독자는 긴 설정을 읽기 귀찮다.'
'작가는 긴 설정을 설명하기 힘들다.'
'작가는 세계의 온갖 사물과 인물들을 수치화하여 관리하고 싶다.'
'작가는 복잡한 인과관계 없이 자신의 개입으로 전개를 통제하고 싶다.'
나는 시스템이라는 키워드만 보고 그게 뭔지 단번에 알 수가 없었다. 무슨 IT관련 작품에 들어가는 키워드인가 싶었다. 그래서 시스템 키워드가 붙은 인기작들을 읽은 후에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를 집필하면서 주인공이 접하는 정보들을 어떻게 해야 독자들에게 최대한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작중 배경은 완전히 미래이고 그 세계에 등장하는 것들은 현대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매번 등장하는 그런 것들의 모양, 색깔, 질감, 크기, 무게, 소리, 특징, 용도를 하나씩 다 설명하고 있으면 작품 전체가 설명으로 도배될 판이었다. 게다가 주인공은 단독이 아니라 집단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매우 많은 정보들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판단을 내리는 주체였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이 주인공의 신체에 기계를 이식한 후 BCI 및 근거리 통신망으로 인공지능과 연결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주인공은 무전기가 없어도 원거리에 연락을 하고, 모니터가 없어도 잘 정리된 정보를 보며, 이어폰이 없어도 소리와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어쨌든 독자는 작품 내의 모든 정보를 '글자'로 봐야한다는 게 고충이었는데, 주인공에게 그러한 인터페이스를 이식하여 온갖 정보를 거의 한 문단으로 압축하여 독자들에게 가시성 있게 보여줄 수 있었다.
나는 굉장히 신선한 SF적 장치를 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다들 쓰고 있던 것이다. 상태창이나 스테이터스는 게임판타지라는 장르에서만 쓰는 것인줄 알았고 시스템은 IT관련 작품인줄 알았으니... 이래서 많이 읽는 게 중요하다.
...시스템은 게임 같은 것이다. 상태창과 스테이터스도 비슷한 맥락이다. 홀로그램이든 머릿속에 투영되는 이미지든 작중 인물들에게 알려지고 갱신되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만이 이러한 장치를 얻는 경우가 많다.
시스템, 상태창, 스테이터스(이하 시스템&상태창)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굉장히 명확하다.
일단 시스템&상태창은 어떤 과학적인 원리가 아니라 미지의 절대자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거나, 세계 자체의 법칙에 의해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 [순기능: 독자에게 효율적인 정보 전달, 성취감의 수치화]
예를 들어 작가가 창조해낸 몬스터가 있다고 치자. 그래서 그 몬스터가 얼마나 강한가? 그 몬스터의 이름은 무엇이고 특성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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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몬스터가 나타났다. 녀석은 귀가 뾰족하고 살가죽이 초록색이다.
인물A: 저 몬스터의 이름은 ??다. 조심해. ??는 아주 포악하고 너보다 강해.
독자: (강하다고?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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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몬스터가 나타났다. 녀석은 귀가 뾰족하고 살가죽이 초록색이다.
상태창: 이름: ?? 체력: 50 공격력: 50 특성: 포악함
독자: (공격력이 엄청 높네. 주인공보다 강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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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설명하기 위해선 주인공 옆에 있는 조연이 설명을 하거나, 주인공이 직접 몬스터를 관찰하거나 상대하면서 알아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상태창이 있다면 몬스터라는 객체에 대한 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된다.
열람된 정보는 다른 문학적인 표현이나 비유 없이 독자에게 정리되어 전달될 수 있다. 독자는 시스템&상태창이 없는 정보를 접할 때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되며, 그 몬스터의 이름과 특성을 굳이 작중 인물이 설명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현대인이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판타지적 설정을 더하면 설명은 더 압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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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가 나타났다.
상태창: 이름: 고블린 체력: 50 공격력: 50 특성: 포악함
독자: (고블린이네. 귀가 뾰족하고 초록색이겠지. 공격력은 주인공보다 높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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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작가들이 이런 장치를 활용하여 독자들에게 성취감을, 작품 전개를 위한 목표의식을, 그리고 설명 스킵을 통한 효율적인 정보 전달을 하고 있다.
- [역기능: 분량 조작 의심, 정보의 과포화, 단조로운 전개]
나는 이런 장치를 많이 쓴 화가 있으면 분량을 조금 더 넣으려고 신경을 썼던 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시스템&상태창으로 한 편의 분량을 채우는 작가들이 많던 모양이다. 실제로 작가가 시스템&상태창이 많이 나온 편에 평소보다 분량을 더 넣어서 연재해도, 어쨌든 시스템&상태창이 많이 나왔다는 이유로 작가가 분량을 조작한다며 성을 내는 독자들이 있던 것이다. 그 독자들이 각 편의 분량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그렇게 분량을 채우고 있길래 성실한 작가에게도 성을 낼까 싶었다.
그리고 정보 전달의 효율이 압도적이라고는 하지만 작품적으로는 읽는 맛을 떨어뜨리는 장치가 될 수도 있어 경계해야 한다. 인기가 있는 작가든 없는 작가든, 일단 사람이라면 자기만의 문체가 있는 법이다. 문체는 필력과는 별개의 것이다. 작가의 문체라는 건 작품과 관계 없이 드러나는 작가의 개성이고 이것 때문에 그 작가를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다. 또한 그 작가만의 전개 스타일(빌드업)이 있을 수도 있는데, 전개 과정에서 시스템&상태창으로만 매번 제시되는 목표는 자칫 주인공이 수동적으로 절대자의 장치에 따라 끌려다니는 느낌을 줄 우려가 있다.
따라서 적당히가 중요하다. 시스템&상태창으로 매번 작중 묘사를 퉁치게 된다면 독자들은 그 작품을 기억하더라도 그 작품을 쓴 작가는 기억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그 작가만의 문체뿐만 아니라 그 작품과 작중 상황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도 시스템&상태창만 사용해선 무리가 있다. 작중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가? 어떤 분위기가 되었는가? 상대는, 사물은 어떤 형태를 하고 있으며 이를 보는 주인공의 심정은 어떤가? 주인공의 다음 목표는 어떻게 제시될 것인가?
결국 시스템&상태창은 남용해서는 안 되는 효율적인 정보 전달의 도구이자, 주인공(독자)에게 목표의식과 성취감을 주는 전개장치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게시글에 들어간 그 어떤 요소보다, 작가로서 가장 편리하고 강력한 장치라 생각한다.
Z아카데미
'독자와 작가 모두 학창시절이 있다.'
학교를 배경으로 삼는 작품이다. 그 학교라는 게 현실의 학교보다는 판타지의 학교이거나, 판타지처럼 변한 현실의 학교인 경우가 많다. 그 학교라는 것도 마법학교, 사관학교, 용병학교 등 일반적으로 공교육을 받는 학교와는 결이 다르다.
- [순기능: 누구라도 이입하기 쉽다.]
이입하기 가장 쉬운 장르다. 정상적인 공교육을 받은 대한민국 독자라면 당연히 학창시절이 있다. 그리고 공부만 한 사람이든 놀기만 한 사람이든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든, 학창시절에 후회스러운 선택이나 경험이 있을 것이고, 정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든 학창시절에 동경했던 것이나 원했지만 이루지 못했던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이라고 해서 그때로 '회귀'하는 장르가 아니다. 물론 회귀까지 섞은 작품도 있지만, 아카데미가 메인인 작품은 주인공의 학창시절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장르의 핵심이다.
그래서 대리만족의 허들이 낮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어 적국을 상대로 승리를 쟁취하는 주인공에게 이입하는 것보다, 학교에서 성적으로 1등을 하는 주인공에게 이입하는 게 더 쉽다. 그리고 일단 이입이 되었으면, 주인공의 감정과 성취에 공명하기 쉬워지고 작품에 더 잘 빠져들게 된다.
아카데미 장르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다른 장르에 비해 스토리도 상대적으로 쉽다고 볼 수 있다. 무대의 이동이 적고 공간이 적기 때문에, 뇌가 동시에 상상해야 하는 객체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래픽이 안 좋은데 렉이 걸리는 게임이 있다. 그런 게임은 대체로 게임 내에 존재하는 오브젝트가 많아서 연산처리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다. 독자(우리)의 머리도 똑같다. 무대의 이동이 많으면 많을수록, 무대가 넓으면 넓을수록, 인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물과 사건이 많고 복잡할수록 뇌의 연산처리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진다. 이렇게 상상하고 생각할 거리를 좋아하는 독자도 많지만, 웹소설 시장에는 그런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독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가볍고 단순하고 연산처리가 적지만 강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카데미라는 장르는 강력하다. 누구라도 이입이 쉽다는 것 하나 때문에.
그중에서도 이입이 매우 잘 되는 작품은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카데미라는 소재는 작품으로서 '이입'이라는 부분에 플러스 점수를 먹고 시작하는 것이다.
- [역기능: 무대가 작다. 목표도 작다. 엔딩이 소박하다.]
누군가의 작품 속 주인공이 하찮다는 비난의 댓글이 눈에 선하다. 그런 댓글을 남긴 사람은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을까.
어떤 작품의 어떤 주인공은 세계를 구하려 한다. 어떤 주인공은 인생을 다시 시작하여 성공한 삶을 꿈꾼다. 또 어떤 주인공은 피비린내 진동하는 복수를 위해 구른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세계를 여행하고, 오지를 탐험하고, 전장(던전 등)을 누비며, 육체와 두뇌로 시련에 맞선다. (주인공에게 시련이라고 할만한 위기가 아예 없는 작품은 예외.)
누구라도 학창시절이 있기 때문에 이입하기 쉬운데, 결국 학창시절이란 미성숙한 시절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아카데미에서는 대체로 주인공만이 성숙하고 특별하며 뛰어나다. 혹은 뛰어나지 않더라도 주인공에겐 잠재력과 목표의식이 있다. 반면에 주인공과 같이 같은 아카데미에 있는 인물들은 주인공에 비해서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것으로 주인공을 띄워주어 대리만족을 주는 방식이 보편적이다. 아카데미의 인물들 모두 저마다 뛰어난 점이 있고 그 속에서 재치 있게 활약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작품은 찾기 어려웠다.
적당히 강한(혹은 압도적으로 강한) 주인공이 잠재력을 써 활약하는데, 주변인물들은 굉장히 수동적이었다. 주인공의 적이 되는 인물은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주인공에게 속거나 당한다. 주인공이 남성이라면 주변 여성 인물들은 주인공에게 연심을 품는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인물들은 주인공을 두려워하거나, 존경하거나, 칭찬한다. 아카데미라는 무대 속에서 이것이 반복된다.
그래서 아카데미가 메인인 작품의 무대는 그 아카데미가 있는 곳으로 당분간 혹은 엔딩까지 한정되며 무대가 확장되는데 제약이 있다. 주인공의 주변인물들도 입체적이기 힘들고 다양성이 부족하다.
아카데미를 소재로 성공한 작품들은 이러한 딜레마를 다양한 방법으로 극복했다.
'미성년자들의 하찮은 학교놀이.'
-> 주인공을 포함하여 작중 인물들을 모두 성인 이상의 전문가(실력자)들로 구성하고 아카데미 또한 거대한 목표가 있는 장소로 설정한다. 예를 들어 일정한 클래스 이상의 마법사들이 모인 마법학교에서 세계를 파멸시키려는 마왕을 막기 위해 정예들만 육성하는 것. 아니면 세계 각지에서 최고의 용병들만 모은 용병학교에서 전설적인 용병을 따라 훈련을 받고 최정예 집단으로 거듭나는 것. 이러면 당연히 주인공과 아카데미에 소속된 인물들도 그냥 1등, 그냥 졸업이 아니라 비범한 목표를 가지게 된다.
'능력 하나 가진 평범한 주인공과 주변의 멍청이들.'
-> 작중 그 어떤 인물도 작가의 지능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아무래도 이건 작가의 역량 차이가 크다. 이 주인공의 능력이 대단하고 주인공의 성격이나 경험이나 지능이 비범하다고 말해도, 그건 작가의 서술에 지나지 않는다. 독자들은 주인공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는가를 보면서 작가의 서술에 동의하거나 비동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작품 불문, 능력 불문, 경험 불문, 주인공의 비범함을 독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지능'이다. 또한 멍청한 주인공을 싫어하는 독자는 있어도 똑똑한 주인공을 싫어하는 독자는 없다.
주인공의 지능 = 비범함
주인공에게 잠재력을 부여하되 처음부터 너무 강하지는 않게 하여,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이 두뇌전을 하게 만든다. 주변 인물들은 주인공과 두뇌전을 하게 되면서 작중 인물들 모두의 평균지능이 상승하는 듯한 효과를 줄 수 있다. 대신 이러면 작가는 작품을 쓸 때 그만큼 머리를 더 써야 할 것이다.
(아카데미라고 해서 아카데미만 쓰는 게 아니다. 여기에 회귀라는 압도적 정보격차를 섞을 수도 있다. 사실 머리를 그렇게 많이 쓰진 않아도 주인공이 미래를 알고서 설계하는 과정, 결과가 탁탁 들어맞는 상황이 이어지면 주인공이 나름 똑똑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것조차 어렵다면 그냥 주변인물들의 지능을 하향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너무 자주, 너무 많은 인물들의 지능을 하향한 작품들은 욕도 많이 먹고 나중에 초반의 재미가 떨어지면 하차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두뇌전이라는 것은 복선, 심리, 전략 등 다양한 장치가 조화되어 최종적으로는 독자들까지 속이고 감탄시켜야 하는 인물 간의 지능적 대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면 위에서 말했던 독자 두뇌의 연산처리량이 많아진다. 그래서 작가의 역량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독자들이 머리를 많이 쓰지 않아도 되는 두뇌전이 웹소설적으로 최고의 두뇌전이다.
'어항 속 물고기들'
-> 가끔 체험학습이나 실습 비슷한 명목으로 아카데미라는 무대에서 벗어나 환기를 주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보다 더욱 무대를 확장하고 싶은 작가들은 작품의 세계관 자체에 거대한 변수를 넣기도 한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졸업도 하지 못했는데 마왕의 침공이 시작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상황이라던가. 아카데미 외부에서 주인공을 해하기 위한 공작이 벌어져서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이 아카데미에서 벗어난다거나. 강력한 변수를 넣어서 반쯤 타의적으로 무대를 확장할 수밖에 없는, 긴장감 있는 상황을 조성하는 것이다. (주인공이 작품 중반쯤에 졸업해버리는 방법도 있다. 아카데미라는 소재를 작품 초반~중반에만 이입을 위한 장치로만 사용한 후 주력 소재를 유연하게 바꾸는 것이다.)
뭐라고 해도 결국 아카데미 장르란, 아카데미라는 특수한 무대 속 특수한 상황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작가로서 변형을 가할 때 자유도는 높은 편이라고 예상된다. 그만큼 다른 인기요소보다는 작가의 역량에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하는 듯.
Z게이트(아포칼립스)
'작가는 현실이 더 재밌었으면 좋겠다.'
'독자는 더 진지하게 몰입하고 싶다.'
게이트는 현실에 판타지의 세계를 융합하는 장치다. 주인공이 판타지세계로 가는 게 아니라 판타지세계가 주인공의 현실세계에 들이닥치며 작품이 시작되는 것이다. 주인공의 현실에 불가항력으로 게이트가 열리면서 현실이 판타지로 뒤바뀐다. 이때 게이트에서 판타지의 생물종이 등장하여 현실세계의 군대와 기반을 파괴하고 문명을 퇴보시킨다. 그럼과 동시에 게이트가 열리면서 흘러들어온 새로운 법칙(마나, 스킬, 시스템 등)이 현실의 퇴보된 문명에 적용되어 새로운 문명&집단을 탄생시키거나 주인공의 생존기(아포칼립스 분위기)를 강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포칼립스라는 키워드는 따로 적지 않고 게이트 키워드와 함께 묶겠다.
-[순기능: 판타지인데 이입이 잘 되고 위기감을 느끼기도 쉽다.]
비슷한 상상을 다시 해보자. 판타지세계로 떨어진 주인공에게 이입하기 쉬울까, 현실세계에 있는 주인공에게 이입하기 쉬울까. 둘의 차이를 모르겠다면 이건 어떤가? 판타지세계의 멸망이 더 위험하게 느껴질까, 현실세계의 멸망이 더 위험하게 느껴질까. 어느 쪽이 감정적으로 더 잘 와닿을까?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이다. 그런 현실에 판타지 설정이 개입하여 모든 것을 파괴하고 기존의 문명과 질서와 법칙을 뒤바꾼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주인공은 고군분투를 해야만 한다. 주인공에게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어도 일단 주인공은 우리와 같은 현대인이다. 그래서 이입이 잘 되고 주변 세계가 혼돈에 빠졌기 때문에 위기감을 느끼기도 쉽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해보자. 내게는 어떤 강력한 능력이 있다. 혹은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하지만 나의 직장, 나의 본가, 나의 친구들, 가족들, 내가 늘 걷던 거리와 문명이 모조리 강제로 바뀌는 현실 앞에서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직장, 본가, 친구, 가족과 같은 것이 없고 중2병에 푹 빠진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 게이트로 시작되는 작품은 대체로 도입부가 자극적이다. 좋은 의미에서 자극적이다. 강렬하다는 뜻이다. 현실이 뒤바뀌는 상황에 위기감을 느끼고, 독자는 자신과 똑같이 현대인인 주인공에게 더욱 이입하게 된다. 진지하고 무겁다는 단점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대파괴의 도입부에서부터 진지함과 무거움을 느껴 거부하는 독자는 애당초 힐링물의 수요자다.
주인공의 목표는 처음에 생존, 마지막엔 게이트를 닫든 절대자를 이기든, 세계의 구원이나 인류의 승리를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엔딩까지 도달하는 중간 목표들이 대체로 생존에 직결되어 상당히 진지하고 마지막엔 엔딩의 규모도 범세계적이라는 것이다.
-[역기능: 판타지 설정에 의존적이다. 엄연히 고증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인기요소가 되는 키워드의 특징은 작가의 입장에서 집필하기 쉽고 독자의 입장에서 읽기 쉽다는 것이다.
그런데 게이트는 약간 비대칭적이다. 여전히 게이트는 독자의 입장에서 읽고 이입하기 쉽지만 작가의 입장에서는 고려할 것이 많아진다. 게이트는 집필 난이도가 낮은 장치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게이트는 현실에 나타난 판타지 장치다. 그렇게 해서 현실을 판타지로 만들기 위해선 기존의 법칙과 문명들을 평화적으로든 파괴적으로든 갈아엎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어차피 갈아엎을 거라면 더 강렬한 느낌과 강제적인 재난의 느낌을 주기 위해 파괴적으로 가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현실에는 엄연히 문명이 있다. 지구의 생태계 최상위 지배종이 된 인류의 문명이 존재하며, 그런 문명 전체를 커버하는 세계의 군대가 있다는 것이다. 전 인류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존재들이 게이트에서 나와야만 한다. 혹은 인류가 패배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설정이 현실에 개입해야만 한다. 여기서부터 작가는 생각을 해야 한다.
몬스터에게 총알이 통하는가? 총알이 통하는 몬스터는 무엇이고 안 통하는 몬스터는 무엇인가?
탱크, 전투기, 장갑차, 기관총, 폭격기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존재나 법칙이나 몬스터 집단이 있다면 무엇인가?
인류의 핵공격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막을 수 없다면 그 피해를 몬스터의 입장에서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
각국의 정부는 어떻게 전멸될 것인가? 전멸되지 않고 지하벙커에서 생존했다면 이들을 향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현실에 '스킬'이라는 새로운 법칙이 생겼다면 그것이 현대 질량병기와 냉병기를 상대로 얼마나 효율적인가?
스킬은 장갑을 뚫는가? 방호복을 뚫는가? 어떤 스킬은 되고 어떤 스킬은 안 되는가?
스킬을 가진 능력자나 몬스터가 포병과 공군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
그래서 군대는 전멸하였는가? 와해되었는가? 와해되었다면 잔존 군대는 어떤 전략전술을 펼치게 되었는가? 여전히 현대병기를 사용하는가? 아니면 스킬로 무장한 능력자 집단으로 탈바꿈하였는가?
굳이 군대가 패배하는 게 아니더라도 기존 문명이 전복될 뭔가의 설정이 필요하다.
그밖에도 문명이 재기능을 못하게 되면서 생기는 수많은 여파들을 고려하고 이를 시간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작중에 반영해야 한다. (전기, 수도, 식량, 시설물 유지보수 등)
물론, 위의 것들을 생각하지 않거나 생각하고도 굳이 작품에서 묘사&간접 설명하지 않는 작품도 있었다. 그런 작품들도 충분히 인기작이라고 할 수 있는 반열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인기작들은 예외없이 위의 것들을 고려하여 작중에서 묘사&간접 설명하고 있었다.
위의 것들을 묘사&간접 설명하지 않은 작품이 모조리 망한 것은 아니지만, 인기작들은 반드시 위의 것들을 묘사&간접 설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설정에 의존적이라고 한 것이다. 무대는 현실인데 그것만 빼고는 모두 판타지가 되었기 때문에 작가는 조율을 해야 한다. 완전히 판타지로 가거나,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서 양립할 수 있다. 어쨌든 현실에 판타지가 개입했기 때문에 현실이 판타지를 이기지 못하게 하려면 다양한 판타지 설정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판타지 의존적이며, 생각할 것이 많다고 한 것이다.
대신 이러한 것들을 집필 전 탄탄하게 설정해두고 도입부의 카타스트로피와 간단한 설명이 끝나면 이후 독자들의 이입은 아주 쉬울 것이며, 작가의 입장에서도 전개를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다. 그래도 게이트 장르의 집필이 쉽지는 않겠지만 사전 설정이 탄탄하다면 나름 자유도가 있고 다채롭게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회귀나 빙의나 다른 키워드를 섞으면 역기능을 더욱 커버하고 시너지를 일으켜 더 새로운 맛을 낼 수 있을 것이다.
Z망나니&Z마교&Z천마
'독자는 주인공이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답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독자는 권선징악보다 오로지 징악에 관심이 있다.'
위 세 개 키워드를 하나로 엮은 이유는 주인공의 특성이 피카레스크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망나니였던, 선하지 않았던' 누군가의 육체로 빙의한 주인공 사례는 제외하겠다.
요점은 선하지 않은 주인공이다. 이 선하지 않은 주인공이 망나니다, 마교의 교주다, 천마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특성을 위해 주인공을 독재자, 악역, 암살자, 빌런, 깡패 등 부정적이고 어두운 단어로 설정하는 경우도 있다. 양아치나 강간범인 주인공은 싫어도 철없는 망나니나 무시무시한 대량학살범인 주인공은 괜찮지 않은가.)
그런데 주인공이 선하지 않다고 해서 꼭 사악하다는 건 아닌 경우가 많다. 순수문학이나 영화의 피카레스크 구성을 보면 느와르나 정복자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 웹소설 시장에서는 답답하지 않게 행동하는 주인공, 사이다 행동만 하는 주인공, 악을 더 큰 악으로 처단하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독자들에게 쾌감(강한 자극, 사이다)을 주는 것이며, 이러한 구성이 주인공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주인공 중심으로 전개되는 웹소설의 특성상 주인공에게 이러한 속성을 부여하는 것은 충분히 인기요소가 될 수 있다.
-[순기능: 다른 건 몰라도 주인공이 답답하게 행동할 일은 없다.]
이런 작품의 주인공은 대체로 계산적이며 손익을 따진다. 때로는 독자의 기대에 힘입어 충동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어쨌든 주인공은 윤리나 도덕성보다 자신과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망설임 없이 행동한다. 적들이 투항을 해도 이용가치가 없으면 그 자리에서 해치우고, 죄 없는 마을사람들이 동원된 전투라도 그들이 결국 적군이라면 칼을 거두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북한과 전쟁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북한군을 총으로 쏴죽이면서 그들의 인생 서사나 입장에 대해 생각해보고 연민을 느낄까? 다 같은 한민족인데... 저 북한군에게도 가족과 친구가 있을 텐데... 하면서 말이다. 일부는 그렇게 연민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전장에서 북한군을 상대로 싸우는 군인들의 입장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그리고 작품에서 주인공은 당연히 이런 전장에 직접 관련되어 싸우는 포지션이 될 것이다.
여기서 더욱 보편적인 윤리관을 설명하기 위해 주인공의 상대 북한군을 어린 소년병으로 설정해보자.
주인공은 소년병이 자신에게 총구를 향하고 있음에도 연민을 느껴 발포하지 않는다. 그러다 어깨에 총상을 입고 만다.
결국 윤리관과 도덕성 탓에 주인공이 자신이나 자기 동료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리스크 있는 행동을 하게 된다면, 대다수의 독자들은 주인공의 감정선을 거부할 것이다. 그런 건 상황을 봐가면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에게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작품들은 주인공의 윤리관과 도덕성을 지키기 위해 그러한 리스크를 감수하게 만들어, 대다수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아마도 우리는 여러 작품을 보면서 그렇게 행동하는 주인공을 보고 답답함을 느낀 경험이 많다.
반대로 상대 북한군, 어린 소년병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번에 쏴죽이는 주인공이 있다고 하자. 그 행동 한 번으로 사이다가 되고 카리스마가 된다. 사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은 내적으로 갈등하고 조금이라도 망설이는 게 훨씬 더 정상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어째서 우리는 망설임 없이 소년병을 쏴죽이는, 다소 비정상적인 주인공을 좋아할까?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우리가 다른 작품에서 혹은 현실에서 이런 걸로 답답함을 느낀 경험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을 '선하지 않은 주인공'이 해소해주어, 독자들에게 강력한 대비효과를 선사한 것이다. 이는 곧바로 주인공의 매력까지 이어지며 독자들이 환호하게 만든다. 우리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계속해서 이득을 쟁취하고 독자들은 대리만족을 느낀다. 가끔 주인공이 뜻하지 않게 정의구현을 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선하지 않지만 주인공이 철퇴를 내리는 상대들은 분명하게 사악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피카레스크 구성의 순기능이 뒤따라온다. 자극적이고 강렬하며 원초적인 상황, 인간으로서 지양되는 행동들을, 인간만도 못한 자들에게 가하는 주인공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대의나 정의감은 없다. 그것 역시 주인공의 계산이나 감정을 위한 일이다. 하지만 사이다는 사이다다.
-[역기능: 전개에 따라, 작가의 역량에 따라 독자는 주인공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대한 거부감&괴리감을 느낄 수 있다.]
전설적이고 사악한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가 있다. 그런 주인공은 무슨 짓이라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재밌게 영화를 즐긴다.
하지만 주인공 중심으로 전개되는 웹소설에서는 지나치게 사악한 주인공을 쓰기 어렵다. 웹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생각과 감정을 독자들에게 공유하며, 독자들은 그런 주인공을 자신의 분신처럼 삼아 작품 속 이야기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분신이 죄 없는 사람들을 타당한 이유도 없이 살해하고 세계를 병들게 하고 때로는 입에 담을 수 없는 강력범죄까지 저지르는 인물이라면 어떨까. 독자들은 모두 사회 속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난 현대인들이며, 현대인으로서 마땅히 가지고 있는 도덕적 감수성이 있다. 바로 그 도덕적 감수성에서부터 지나치게 사악한 주인공에게 거부감을 느껴 완독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주인공이 뭐라고 독백하든 미친 사이코패스의 자기변명으로 들리며, 주인공의 감정에 공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도덕적 거부감은 3인칭 서술보다 1인칭 서술일 때 더 심해진다.
그래서 주인공의 특성을 선하지 않음에 둔 작품들은 주인공의 도덕성에 적당한 정도를 두는 편이며, 전개 역시도 주인공의 특성이 깨지지 않고 적당히 나쁜 짓을 할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추어 흘러가게 한다.
바로 이때 작가의 역량에 따라 주인공이 얻는 것에 비해 지나치게 악한 선택을 하게 된다면 독자들은 조금씩 거부감을 느끼며 주인공이라는 자신의 분신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한다. 반대로 지금까지 일관되게 선하지 않았던 주인공이 아주 약한 계기로, 혹은 계기라는 것도 없이 갑자기 선한 행동을 하여 조금이라도 손해를 본다면 독자들은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이런 키워드에서 선하지 않은 주인공으로 주인공 중심의 전개를 이어가다보면, 작가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모습을 주인공에게 투영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주인공에게 윤리나 도덕성은 없는데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는 바람에 일관되던 캐릭터성이 깨져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개과천선의 계기 없이 주인공이 갑자기 선한 행동을 취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작가는 주인공이 지나치게 악한 행동도 불필요하고 선한 행동으로 인한 손해도 있지 않도록 상황을 제한하여 전개를 이어가야만 한다. 조금 난해한 말인데, 이렇게 적절한 선타기의 상황 부여가 왜 작가로서 어려운지는 직접 써보면 알 것이다.
Z재벌
'작가든 독자든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문자 그대로 재벌이다. 주인공이 재벌가의 가족구성원이거나 사생아이거나 아무 관련도 없지만 재벌가에 들어가서 밥그릇을 차지하는 전개가 많다. 주인공이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직접 재벌가를 세우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핵심 키워드는 재벌이다. 돈이다.
작가가 진심으로 자본주의와 부에 대해 모조리 공부해서, 주인공이 판타지적인 능력 없이 현실적인 역량으로만 재벌이 되는 작품은 없다. 그런 내용은 실제 부자들이 쓴 자서전을 보는 편이 더 좋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부를 획득하는 핵심 수단은 판타지적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거짓말을 읽는 능력이 있다거나, 금괴를 생산하는 프린터를 갖고 있다거나, 인간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가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거나, 로또나 코인 등으로 일획천금을 하는 식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돈을 좋아한다.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재물욕을 없앤 스님들도 돈에 관심이 없을 뿐이지 돈을 싫어하고 미워하지는 않는다. 즉, 돈이란 현대인 대다수가 좋아하는 것이며 누구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소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 개념이 존재하는 세계관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부자가 되진 못할지언정 끝까지 가난하게 연출되진 않는다. 돈 역시 대리만족과 성취감의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순기능: 돈은 작품 외적으로 대리만족과 성취감을 주며, 작품 내적으로 주인공의 능력이 된다.]
돈이라는 소재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다. 일단 작품 내적으로 돈을 얻은 주인공은 성취감을 전달한다. 그리고 돈으로 하여금 많은 일들을 실행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주인공의 선택지가 늘어나면 작가의 입장에서 다양한 전개를 구성하기 수월해진다. 무력만으로 전부 이기는 주인공도 좋지만, 무력에 재력까지 있으면 주인공이 이기는 수단이 다양화되면서 작가의 전개 선택폭이 넓어지고 작품 전개도 독자들이 예측하기 어렵게 되어 신선함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무력으로 이겼을 때와 재력으로 이겼을 때의 사이다는 서로 다른 맛이 난다. 무력이 자극적인 맛이라면 재력은 매력적인 맛이다.
작품 외적으로는 독자들의 대리만족이 따라온다. 내 작품을 1000명이 읽었을 때 그중 정말로 부자라서 주인공의 재력이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독자는 몇이나 될까? 대다수의 독자들은 일반인의 범주를 넘어서 재력을 획득해가는 주인공을 보며 즐거워할 것이다. 주인공은 독자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이라는 가치에는 MAX가 없다. 현대시대를 기준으로 주인공이 100억을 가졌든 1조를 가졌든 그 끝은 없다. 작가가 주인공을 너무 강하게 만들면 파워인플레이션이 오기 때문에 주인공의 성장에 제동을 적절히 걸어주고 더 큰 위기를 가져와야 한다. 하지만 돈은 웬만해선 그 크기에 '지나침'에 대한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그리고 재력을 주능력으로 삼은 주인공은 대체로 지능까지 수반한다. 돈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두뇌전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승리한 주인공의 이익과 패배한 반대측의 손실이 '돈'이라는 숫자로 가시화된다면 인물들의 감정선에 설득력을 더할 수 있다. 자신의 마법능력 하나를 잃어버리고 오열하는 악당의 감정선에 더 몰입이 쉬운가? 아니면 100억을 잃고 오열하는 악당의 감정선에 더 몰입이 쉬운가?
그래서 재벌을 소재로 삼은 작품은 근현대의 현실을 배경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독자에겐 판타지의 금화보다 현실의 돈이 더 와닿고, 작가로서는 현실사례를 기반으로 작중에 있는 각종 재화의 가치를 설정하기 쉽기 때문이다.
-[역기능: 주인공이 있는 세계관과 주인공의 상황에 따라 연구가 필요하다.]
이는 순기능에서 설명한 마지막 문단과 이어진다.
작가가 현실을 배경으로 삼았다면 고증 조사는 필수적이다. 주인공이 어떤 기업을 인수하는데 돈을 얼마나 쓰는지, 어떤 과정에 의해 인수를 하게 되었는지, 주주와 기업의 관계는 어떻고 재벌가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각종 제품공장은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물건이 유통되는지, 어디까지가 현실적이고 어디까지나 작품으로서 납득 가능한 정도인지. 그런 것들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고 오로지 상상으로만 쓰게 된다면 독자들은 엄청난 괴리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현대 배경의 재벌물을 쓰려면 작가에게도 폭넓은 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작품에 주식이 등장한다면 주식공부를, 코인이 등장한다면 코인공부를, 공장을 돌린다면 생산라인에 대한 공부를, 기업인수합병에 대한 이야기나 계약서를 쓸 때 등 현실고증이 필요한 게 많다.
반대로 작가가 판타지세계를 배경으로 삼았다면 스스로 합리적인 가치 설정을 해야 한다. 인건비는 얼마인지, 은행은 있는지 없는지, 이 세계관의 일반인들은 자본에 대한 기본지식을 어느 수준으로 갖추고 있는지 등이다. 몬스터가 날뛰는 세계에서 빵 하나의 가격이 금화 한 닢인데 용병의 하루 인건비가 금화 두 닢이라고 해보자.
몬스터가 날뛰는 세계라면 무력에 대한 수요가 클 것이고 목숨 걸고 무력을 제공하는 용병에게는 위험부담을 포함한 인건비를 줘야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용병이 하루에 빵 두 개의 가격을 받는다면? 용병이 노예라면 모를까 평민이라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엑스트라 포지션인 용병보다 훨씬 강한 용사 포지션의 주인공이 인건비를 받는다고 해보자. 과학기술이 중세에 머물러있고 몬스터가 날뛰어 사람들을 위협하는 세계라면 무력에 대한 대가지불은 오늘날보다 훨씬 크고 중요할 것이며 주변국이 있다면 외교적인 반응도 있을 것이다.
외교까지 가면 복잡하니까 단순하게 돈만 생각해보자. 용병이 하루에 금화 10닢을 받는다고 했을 때, 용사인 주인공은 몇 닢을 받아야할까? 가격선정을 무엇을 기준으로 잡아서 할 것인가? 계급인가? 성과점수인가? 명성인가? 소속인가? 그런 것을 정할 줄 모르는 작가가 아무리 판타지세계라고 한들 재벌 주인공으로 독자를 설득할 수 있을까?
독자가 작가보다 경제지식이 풍부하다면, 작중 주인공의 최대 지능은 작가를 넘지 못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점차 주인공을 답답하게 여길 것이다. 아니 주인공아 이런 방법이 있는데 왜 이렇게 안 하냐고. 그렇게 거래하면 손해인데 왜 그렇게 하냐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속 터진 독자들의 화살은 곧 주인공을 넘어 작가에게 향할 것이다.
명심해야 한다.
현실이든 판타지든 재벌물을 쓰려면 경제에 대한 지식이나 특정 분야의 전문성이 확실해야 한다.
기타
그밖에도 스포츠, 전문가, 무협, 힐링과 같은 큰 키워드들이 있었는데 공통적인 특징을 단번에 찾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위에 나열한 키워드들보다는 주인공에게 특별성을 부여하는 방법이 작품마다 다양하고, 위 키워드들과 혼합해서 쓰는 경우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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