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편집자님과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웹소설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 더 상승했다.
그리고 편집자님과 헤어지면서 다시 작가가 아닌 무언가로 돌아온 현생에 뛰던 가슴이 잠잠해진 것 같다.
확실히, 지금보다는 집필활동을 했을 때가 더 행복했다.
모든 취미생활을 접어서 행복도가 떨어진 게 아니다. 단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집필활동에 비해서 성취감이 부족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사고의 사슬이 하나 생겼고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사고의 사슬은 밤낮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머릿속 사슬이 자동적으로 이어지다보니 3일 후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꿈에도 적절한 시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30대가 프로게이머라는 꿈을 이루기 어렵고, 60대가 국가대표 축구선수라는 꿈을 이루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나이, 환경, 사고방식, 상황, 시기에 따라서 꿈은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꿈이란 절대 포기하지 말고 반드시 이루어야만 하는 것이라 말하겠지만 내 견해는 다르다. 꿈이 많으면 많을수록, 크면 클수록 인생은 최적화되어야하고 모든 목표와 계획에 시기를 적절하게 잡아야만 한다.
정보보안전문가. 그중에서도 전사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그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내 능력치'를 분산투자했다. 좋게 말하자면 아는 게 많고 다재다능하다는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주력이 없어서 이도 저도 아닌 잡캐가 되어버린 것이다.
BoB에서 떨어진 후 내가 잡캐라는 현실을 더 지독하게 깨달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사회적인 몸값은 얼마인가. 내가 얼마나 값어치 있는 생각을 품었으며 얼마나 자기계발을 해왔든, 이를 사회에 증명할 수 있는 확실한 결과물이 있는가. 증명할 수 있는 결과물이 있다고 하여도 그중에 주력이라는 게 있는가. 그것으로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아서,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할 수 있는가. 지금 그것이 어려우니까 결과물을 만들기까지 추가로 돈과 시간을 쓸 수 있는가.
그럴 수 없었다. 효율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포기했다. 정말 너무나도 간절한 꿈이었다면 1년을 더 써서 정보보안전문가가 될 수 있는 그릇을 갖추겠지만 그 정도로 간절히 원하는 꿈은 아니었다. 단지 어려서부터 내 성향, 적성, 흥미에 가장 잘 맞는 직업이 무엇인지 공교육 속에서 고민하다가 이른 시기에 합리적으로 결정하여 그것을 취업 목표로 삼고만 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4년 전부터 그리고 최근까지도 부와 꿈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어떤 계획이 내게 최적화된 길인가. 나는 어떠한 수단을 써서 어떻게 그 경로에 들어가, 어떻게 크고 작은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잡캐라고 해서 후회하지 않는다. 그만큼 다방면에서 자기계발을 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을 하고 이러한 결론을 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유와 근거는 무진장 많지만 내 선택은 발판의 마련이었고 본격적인 출발이 될 수 있는 첫 번째 발판을 부동산으로,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을 경매로 삼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 부동산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에 대한 추가적인 공부가 필요해서 모든 취미생활을 접었고, 경매라는 수단을 사용하기 위해 노동을 하여 자본을 축적하고 있던 것이다. 만들고 싶은 게 많기 때문에 돈과 시간이 필요하고 돈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발판들을 계획하고 그 발판들을 위해 공부하며 노동하고 있던 것이다.
여기서 계기는 첫 문단으로 돌아간다.
최근에 편집자님과 만나면서 웹소설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 더 상승했다.
많이 상승한 것도 아니다. 거의 대부분 알고 있던 것들이었다. 남들 술마시고 게임할 때 나는 3년을 갈아서 작품을 일곱 개나 썼는데 모를 리가 있겠나. 단지 내가 갖고 있던 정보에 대한 확신을 받게 되었을 뿐이다. 조금 더 자세한 사정을 추가로 습득하게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조금의 새로운 정보가 자그마한 사고의 사슬을 만들었고, 그것이 쭉 이어져 머릿속에 있는 다른 사슬들과 결합하였고, 끝내 하나의 깨달음까지 도달한 것이다.
상업적인 작품을 써보자.
겪어보니 알겠다. 어차피 노동할 거라면. 어차피 지금 돈을 버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 어차피 남을 위한 일보다 나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면. 어차피 지금 무슨 일을 해도 이전만큼 행복할 수 없다면.
차라리 집필을 하자. 노동이 아니라. 그게 그나마 더 행복하고, 더 성취감 있고, 더 나를 위한 일이고, 안정성은 떨어지지만 단순노동과 달리 지수함수가 적용되는 수익이며, 내 시간을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긴다. 게다가 정신적으로 힘들면 힘들었지 체력적으로 힘든 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다. 부동산 임장이나 입찰을 가기도 편해질 것이고 스스로 금지했던 취미도 아주 조금은 되찾을 여유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작품을 쓸 것이다.
이전과는 달리 이번엔 완전히 돈을 벌기 위해 쓸 것이다. 이번 집필은 자아실현이 아니라 수익실현이 목적이다.
상업적인 작품이라는 게 무엇인지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다. 직접 써본 적이 없어서 이론적으로만.
웹소설 시장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 싫다고 욕하고, 비판하고 비난하고, 거르고, 손가락질을 받아도 궁극적으로 이 시장에서 가장 잘 나가는 요소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결과와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사실 '상업적인'이라는 표현도 광의적이다. 내가 쓰려는 작품은 '대중적인' 작품이며 절대다수의 독자층이 '선호하는' 작품이다.
편집자님께서 말씀하셨다. 요즘 웹소설 시장에 나오고 있는 작품들이 최적화가 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나는 사막에서 아주 잘 만들어진 온풍기를 팔고 있었다고.
매우 동의한다. 환생, 회귀, 빙의, 상태창, 시스템, 현자, 아카데미 등 인기요소들은 작가와 독자에게 미치는 순기능이 크고 역기능이 작다.
그 순기능을 최대화하고 역기능을 최소화하여 자신의 것으로 잘 만들어가는 작가들이 대작을 쓰는 것이다.
SF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가 한국의 웹소설 시장에 와서 '최후의 질문'을 집필했다면 어땠을까.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신'을 집필했다면 어땠을까. '개미'를 집필했으면 어땠을까. 그것들은 부정할 여지가 없는 희대의 명작이다.
하지만 그런 명작들이라도 이러한 시장 속에서는 너무 전통적이다. 특수한 변수가 개입하지 않는 한, 그런 명작들이라도 본래 가지고 있는 가치를 100% 발휘하긴 어려울 것이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슬로우푸드를 파는 꼴이다. 이를 웹소설 시장에 맞춘다면 최후의 질문에 나오는 컴퓨터 멀티백이 현대인의 감수성을 지닌 채 우주를 구원하려는 목적을 지닌 마법을 쓰는 환생자라던가, 신에서 나오는 미카엘 팽송이 앞으로 신들의 '아카데미'에서 벌어질 일들을 전부 알고 있는 낙재생 회귀자라던가, 개미에서 나오는 어느 여왕개미가 사실은 한쪽 다리가 불구인 40대 청년의 정신이 빙의되어 '개미 종족'을 진화시키는 상태창을 볼 수 있는 존재라던가. 그런 것들에 더하여 웹소설 플롯에 맞는 전개 구성이 필요할 것이다.
비약이 있는 예시지만 그런 요소들을 섞지 않으면 결국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슬로우푸드, 사막에서 파는 온풍기가 된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나는 그 정도의 명작을 쓸 실력도 안 되는데 정통다크판타지와 하드SF를 해왔다. 물론 후회는 없고 시간을 되돌린다고 하여도 그 작품들을 써낼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고서 나는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기로 했다.
무조건 돈을 벌기 위한 작품을 쓰진 않을 것이다. 목적은 돈이 맞지만, 내게 모인 독자층의 보편적인 성향을 떠올려보면 어느 정도 조율이 필요하다.
돈은 잃어도 사람은 잃지 말라는 말이 있다.
만약 이 작품이 평균 이상의 인기를 끈다면 기존 독자층보다 유입 독자층의 수가 훨씬 많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기존 독자층을 더 생각하고 싶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며, 내가 그들과 소통하면서 느낀 감사함과 교훈을 등한시하고 싶지 않다. 내 작품과 내 색깔이 좋다며 전부 읽어본 사람이 나의 다음 작품을 보고서 실망하게 된다면 나는 그게 제일 아프다. 작품이 망해버리는 것보다 더.
그러한 조율을 정하고서 상업적인 작품에 대한 구상이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그리고 며칠을 기다려보니 내 머리가 새로운 이야기를 아주 조금씩 내 머릿속에 흘리기(?) 시작했다. 이것들을 모아서 상업적인&대중적인&절대다수의 선택을 받기에 최적화된 내용을 구성할 것이다. 이런 조율의 결과가 양쪽 독자층 모두의 거부감이라는 최악의 결과가 나와도 도전할 가치는 있다.
잘 준비해서 내 색깔도, 기존 독자층도 잃지 않고서 돈이 목적인 작품을 써볼 것이다.
우선은 그동안 미루고 미루고 미뤘던... 읽기부터 해야 한다.
나는 트렌드에 맞추어 잘 팔린 작품들을 읽어본 경험이 전무하다. 평생에 단 하나도 읽지 않았다.
분석한다는 마인드로 나부터 그런 작품들을 많이 읽어봐야 머리에 데이터가 쌓일 것이다. 지금은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소재, 전개, 장치를 알고 있다. 그 부분부터 채워서 내 것으로 만들자. 그래야 내 방식대로 변형을 하든 가공을 하든 하지. 내 작품의 내용이 읽은이의 머릿속 저장공간에서 다른 무언가와 뒤섞이는 건 바라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은 변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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