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즐긴 공포영화는 곡성이다.
같은 감독의 작품이라고 해서 엄청난 기대를 가지고 랑종을 보았다.
우선, 나는 점프 스케어(Jump Scare, 이하 갑툭튀)를 극도로, 정말 매우 많이 싫어한다.
읽는이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 결론부터 내놓자면..
공포 장르에 대한 취향이 나와 같은 사람이라면 랑종은 보지 말기를 바란다.
초반부터 중반까지를 너무 잘 만들었기 때문에 후반의 실망감도 매우 클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나는 척수에서 반사적으로 느껴지는 듯한 '놀람'은 '공포'가 아니라고 여긴다. 길을 걷다가 모퉁이에서 갑자기 자동차가 튀어나왔을 때 우리는 화들짝 놀란다. 얼음이 가득 채워진 아메리카노 한 잔이 모니터를 꽉 채움과 동시에 볼륨 200%의 애국가가 재생된다고 해도 우리는 똑같이 놀랄 것이다.
어두운 환경, 음산한 배경음, 긴장감, 잠시 안도했다가 갑툭튀!
갑툭튀 전까지의 전조는 확실히 공포라고 생각한다. 어두운 환경과 음산한 배경음으로 긴장을 유발하는 것은 충분히 공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화론적으로 우리는 그런 것을 무서워하며, 그러한 감각을 즐기는 것도 나름 재밌다. 그게 공포라는 장르의 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갑툭튀가 나온 순간부터 더는 공포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저 편도체가 반응하는 것도 공포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어쨌든 나는 갑툭튀가 나온 순간부터는 공포가 아니라 무한정 긴장 상태에 빠지게 된다.
또 언제 갑툭튀가 나올까 계속 걱정하고 경계하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스토리에 몰입이 되지 않고 인물들의 서사에 빠져들기가 어려워진다. 인물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는 게 아니라 현실에 있는 나의 입장에서, 오로지 화면이나 스크린의 변화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곡성은 정말 제대로 즐겼다. 곡성 때 나는 주인공이 되어서 의심하고 불안해하고 고민하고 마지막 순간에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랑종도 곡성과 전개가 비슷했다. 나는 등장인물 '님'과 외부인인 '카메라맨'이 되어서 랑종의 세계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이야기에는 복선이 깔려 있었고 그것이 복선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점점 더 구체화되고 점점 더 끔찍하게 변하는 공포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 빌드업 과정이 살짝 지루하긴 했지만 확실히 공포는 다가오고 있었으니 나쁘지 않았다. 나는 그 공포의 실체를 상상하며 더욱 두려워했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됨)
소름끼치게 다가오는 그 공포의 절정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밍'에게 들어간 것이 하나가 아니라는 대사, 자동차에서 지쳐 눈을 감은 '밍'의 옆 유리창에 똑같이 '밍'의 얼굴을 하고서 미소짓는 존재. 그리고 정말 온몸에 전율이 흐르면서 하마터면 눈물까지 나올 뻔했던... 바얀신 조각상의 머리가 떨어졌던 그 장면.
이후에 cctv 같은 구도로 카메라 촬영 장면이 있는데 '밍'의 기괴한 움직임과 그 상황들이 불쾌한 골짜기를 야기하여, 굉장히 조용하고 정적인 화면임에도 내 심장은 무섭다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극찬에 극찬에 극찬을 아끼고 싶지 않았다. 내 인생에 다시는 없을 최고의 공포영화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밍'이 카메라 앞에 갑자기 튀어나와서 소리를 지른 순간부터 공포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 영화는 곡성 같은 영화다. 그러니까 다른 공포 영화들처럼 갑툭튀는 없을 것이다. 있는 공포를 그대로 즐기면서 스토리에 몰입하면 된다.' 이런 신뢰가 철저하게 부숴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설치된 카메라 앞에 갑툭튀라니. 너무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뭐 한번쯤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까지만 해도.
이후 갑툭튀는 반복되었다. 그래서 어떤 음산한 분위기가 찾아올 때면 공포보다 경계를 먼저 하게 되었다. 웃긴 소리지만 나는 세 번의 갑툭튀 중에 두 번은 방어에 성공했던 것 같다. 신뢰가 부숴지고 공포가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경계 상태에 돌입한 다음부터는, 밍의 기행이 그저 불쾌하게 느껴졌고 후반의 지옥도는 그냥 여타 슬래셔물을 보듯 눈요깃거리로만 보았다. 그때 심오한 스토리나 인물들이 던지는 메시지에 대한 이해 따위는 포기한지 오래였고 후반에 갑툭튀는 시도 때도 없이 난발하여 경계 유발을 넘어서 반복적인 스트레스가 되었다. 큰 소리의 발생과 사물의 갑작스러운 접근에 의한 신체적 반응만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평을 하자면 초반~중반까지는 희대의 명작이라 생각했고
중반 이후부터는 그냥 스트레스 덩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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