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B 11기 후기(불합격)
5시에 최종합격자 명단에 내가 없음을 확인한 후 현실감각이 잠깐 사라졌다.
다시 검색해도 나오지 않을 내 번호를 의미없이 찾다가, 주변에 불합격 소식을 알린 후 몰래 10분 정도 울었다.
20분 후 안정을 되찾고서 미리 정해둔 플랜B를 따라 달력에 적어둔 계획들을 전면 수정했다.
우선, 합격 후기에 비해 많지 않은 불합격 후기에 대해 정리를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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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 11기 지원 후기
2학년 1학기 때 BoB에 최종합격한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와 학교를 다니며 귀에 딱지가 붙도록 BoB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스스로 찾아보게 되고 어느샌가 BoB를 동경하게 된 것 같다. 단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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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에 대한 내용은 이전 포스팅에 정리해두었다.
1. 인적성 검사
인적성 검사도 필기시험도 매 기수마다 그 형태가 바뀌는 것 같다. 도형, 그래프, 맞춤법, 문장구성 등 일종의 지능과 상식을 테스트하는 듯한 과정이었다. 모르는 문제는 찍지 않고 넘어갔기 때문에 나의 경우에 국어는 약 70%, 수학은 도형(공간감각 같은?) 관련된 것은 다 풀었으나 나머지가 약해서 약 50% 정도 풀었던 것 같다.
2. 필기시험
이 시험을 치르기 전에 사전교육을 수강할 수 있다. 정보보안의 각 영역에 대하여 다루고 있고 전체 강의의 길이가 상당히 길었다. 필기시험 역시도 합격자를 뽑는 일에 있어 어느 정도의 비중이 있는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단 한 문제라도 더 풀어야 합격 확률을 1%라도 더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서류합격을 돌파한 이상, 놓칠 수 없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보보안산업기사 준비와 병행이 무리라고 판단하여 과감하게 자격증 원서접수를 취소한 후 BoB에 집중했다.
이후 필기시험에서는 그야말로 정보보안의 모든 영역, 모든 문제가 각기 다른 난이도로 출제되었다. 단기간에 완벽히 준비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나의 경우엔 절반 정도만 풀고 모르는 것은 찍지 않고 넘어갔다.
3. 면접
필기시험이 끝나자마자 계속 면접을 준비했다.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파고드는 압박면접이라는 이야기가 많아서 더욱 철저하게 준비하려고 했다. 그동안 내가 공부했던 것들을 다시 정리하고 잠깐이나마 실습을 했던 것들은 기억을 되살려 핵심 키워드과 그 과정을 다시 공부했다. 서류합격자 발표 직전까지 공부했던 정보보안산업기사가 나름 도움이 되었다.
복장은 규정이 없어서 비즈니스 캐주얼로 합의했고 서울에 있는 본사로 가서 면접을 봤다.
3 대 3 면접이었다. 아무리 준비를 했다지만 압박면접이라는 생각에 긴장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자리에 앉자마자 면접관 분들께서 아이스 브레이킹을 해주셨다. 덕분에 거의 긴장하지 않고 말을 했던 것 같다. 머릿속에 수십 개 이상의 면접 대비 스크립트가 떠다니고 있었고, 기술적인 질문이 들어왔을 때도 낮은 깊이지만 곧잘 대답은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지식이 결코 깊지는 않은 수준이라 '왜?', '어떻게?' 이런 꼬리 질문은 이어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는 거지만 꼬리 질문을 통해 여러 차례 대답한 다른 지원자들이 나보다 면접에서 경쟁력을 많이 확보했으리라 예상된다.
30분이라는 시간은 굉장히 빠르게 지나갔다. 원래 면접이라는 게 100을 준비했으면 그중에 50만 말해도 성공적인 거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면접이 끝난 후, 준비된 내용을 전부 말하지 못해 아쉽지만 적어도 50은 이야기 했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불합격.
자격증처럼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나의 미흡함을 상대적으로 반성해보았다. 내가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부족한 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1. 공백기가 있었다.
-공백기 동안에 쌓은 집필경험은 직무와 밀접한 관련이 없다. 집필을 통해 책임감, 끈기, 정신적 성장을 이루고 이것을 나름 증명할 수 있는 결과물도 있지만, 이는 정보보안과 밀접하게 관련된 활동을 통해 책임감, 끈기, 정신적 성장을 이룬 지원자에 비해서 부족할 것이다. 만약 지원자 A와 B가 있고 두 지원자 모두 자신의 비기술적인 강점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당연히 직무와 관련된 경험으로 강점을 이야기하는 지원자가 더 유리할 것이다.
2. 자격증은 절대적이지 않다.
나는 공부한다는 마인드로 자격증을 공부했고 스펙이나 다른 결과물은 2순위의 목표였다. 하지만 내가 공부한다는 마인드로 자격증을 공부했다는 건 증명하기 어렵다. 만약 내가 면접관이라면 당연히 스펙보다는 학구열에 의해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을 선호하겠지만, 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정말로 이 분야에 흥미가 많았다면 자격증보다는 다른 증명할 수 있는 프로젝트나 개발 경험이 있었으리라.
3. 열정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면접은 서류를 통과하는 지원자들이 마지막으로 거치는 관문이다. 거기까지 도달해서 열정이 없는 지원자가 과연 있을까? 모두가 열정을 가지고 있고 누구라도 이 귀중한 기회를 붙잡아 합격하게 된다면 진심을 다해서 임할 것이다. 따라서 내가 말하는 열정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한 경험이나 결과물이 있어야만 하는데, 위에서 정리했듯 내겐 공백기가 있고 관련 경험(개발, 버그헌팅 등)이나 프로젝트가 전무한 상태다. 또한 공백기가 지난 후 자격증을 여러 개 취득했다는 것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정리하자면 결국 나태했던 과거의 업보로 인해 경쟁력에서 밀린 게 아닌가.
3년간 집필활동을 하면서 내게 정말로 시간이 없었는가. 정말로 어떤 취약점을 찾는다거나 무언가 자그마한 것이라도 개발한다거나, 그런 일말의 여유조차 없었는가. 돌이켜보면 그런 시간은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문자 그대로 피. 혈액을 볼 정도로 바쁘고 힘들기는 했다. 입술이 갈라지고 코피가 나고 충혈도 있었다.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시련이 많았다. 하지만 분명히 내게도 휴식의 시간이 있었고 잠을 자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 시간에 정보보안에 깊은 흥미를 가지고서 직접 뭔가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집필하는 동안의 환경이 안 좋았다는 것은 극복 경험이 될 수 있으나 큰 강점이 되진 못한다. 내가 극복 능력을 쌓고서 간신히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누군가는 나와 똑같이, 혹은 그 이상으로 노력해서 직무 역량을 쌓은 후 하늘까지 올라갔을 거라는 이야기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남들과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휴식을 취할 수는 없다. 이것은 모든 경험자들이 말하는 정론이다. 나는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는 노력의 연속 속에서 그것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흥미, 열정을 증명할 수 있는 결과물이 없다는 게 노력의 부족함을 말하는 증거였다.
그리고 하나 더.
나는 나의 주력 분야와 세부 직무를 정하지 않고서 들어갔다. 첫 직장이 향후 3년 이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BoB와 같이 경험자들이 많은 환경에서 직간접적으로 체험해보고 상담해본 후 정하려고 했다. 오히려 그게 감점의 요소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에 대해 직무 선택의 신중함을 어필했지만, 이는 오히려 정보보안전문가를 꿈꾸는 지원자가 명확한 목표도 없이 이 직무를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요소가 될 수 있었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200명이라는 한정된 인원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나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나보다 더 증명할 것이 많고, 나보다 더 명확한 목표가 있는 이들에게 돌아간 것 같다.
불합격 사실을 확인한 후 1시간 20분이 지났다.
이렇게 정리하니 나의 불합격이 당연하게 보인다.
어쨌든 인생의 어느 지점마다 있는 큰 목표는 그대로니까. 이대로 플랜B를 따라 달려나가야겠다.
만약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 12기, 13기, 어쨌든 미래의 지원자라면...
정보보안의 재능이든 열정이든 흥미든,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결과물을 준비하길 추천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하고 싶은 직무가 무엇인지 확실히 하길 추천합니다. 취약점 분석이라면 웹인지 모바일인지. 컨설턴트라면 체크리스트 진단과 ISMS-P 인증인지 모의해킹인지, 관리적인지 기술적인지. 그런 것들 말입니다. 구체적일수록 좋으며 그것과 관련된 활동 결과물이 있다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엔 관련된 결과물과 뚜렷한 직무 목표. 그 두 가지가 없었고 그 부분이 치명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건 불합격자의 뇌피셜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저도 이전에 불합격 후기를 찾아보던 한 사람으로서 공개해봅니다.
저의 부끄러운 이야기가 반면교사로서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