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도전 1 (인천광역시)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입찰과 관련된 가이드, 이론은 많지만 실제로 가서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을 디테일하게 적어둔 게시글이 많지 않았다.
따라서 이것을 공개된 게시글로 올리는 이유는 내가 기억하기 위함+누군가에게 간접체험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일단 특수한 물건이 아니고 본인 입찰이라는 조건 하에 준비물 목록이다.
- 신분증 or 운전면허증 등 본인을 증명할 수 있는 것: 기본이다.
- 경매보증금: 자기앞수표 일반권으로 한 장 준비하는 게 편하다.
- 도장: 있어야 편하다. 법원에 따라 지장(손가락도장)이 안 될 수도 있다.
- 인주: 있어야 안심된다. 근데 웬만해선 현장에 비치되어 있다.
- 볼펜: 있어야 안심된다. 근데 웬만해선 현장에 비치되어 있다.
- 기일입찰표: 미리 써서 가져가면 실수도 줄이고 시간도 아끼고 초보의 경우엔 침착할 수 있다.
나는 도장, 경매보증금, 볼펜, 기일입찰표를 날짜 착각으로 인해 준비하지 못했다.
2022년 7월 26일 - 임장
야간 알바를 하고 있어서 몸은 피로하고, 전날에도 공부를 하느라 잠이 부족한 와중에 날씨까지 더웠다. 그런데도 첫 임장이라 그런가 막상 집을 나서는 기분은 들뜬 상태였다. 현재 거주지인 수원에서 해당 물건이 있는 곳까지 전철로 1시간 20분, 인천에 도착해서는 해당 물건의 가까운 곳에 주민센터가 있어서 택시 목적지로 찍었다.
택시 기사분께서 내게 호기심이 생기신 것 같았다. 보통 젊은 손님들은 앉아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지, 총각처럼 창밖을 가만히 보고 있는 분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셨다. 거기서부터 대화가 이어졌고 기사님께서는 내 부모님과 비슷한 연세이거나 그보다 더 많아 보이셨다. 이 동네에서 오래 사신 것 같아(뇌피셜) 나도 기사님께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 근처 교통량은 어떤가, 거리에 사람들은 많이 지나다니는가, 밤길은 어떻고 저기 올라가고 있는 건물들은 다 뭐냐, 공사 현장이 많은 것 같다 등.. 나는 기사님과의 대화 속에 몇 번인가 질문을 섞었고 기사님께서는 내 모든 질문에 흔쾌히 답변해주셨다.
덕분에 나는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기사님의 호의로 여러 보너스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감사인사를 전해드리고 택시에서 내리자, 생각보다 평탄한 골목길이 이어졌다. 지도상으로 약간 고지대? 달동네? 느낌이 있어서 골목길의 경사가 오르락 내리락 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해당 물건의 주변은 나름 신축 빌라들이 모여 있어 평탄했던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허름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보이는 건물들이 가까스로 신축 아니면 완전히 구축이라는 느낌.
해당 물건이 있는 동네를 중심으로 신축 아파트가 360도 시야의 절반 이상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였다. 가까운 곳에서도 새로운 아파트와 상가 건물들이 우후죽순 올라가고 있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에 프랜차이즈 편의점이 있었고, 걸어서 30초 거리에 자그마한 마트도 하나 있었다. 전철역은 2km나 떨어져 있었지만 버스정류장은 도보로 7~8분이었다.
해당 물건에는 임차인이 거주하고 있었지만 나는 문을 두드리거나 초인종을 누를 수가 없었다. 속으로 여러 변명을 했던 것 같다. 입찰일이 가까워진 시점이니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을 거라고. 수시로 모르는 사람이 집에 찾아오는 기분은 결코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원래는 임차인이 거주하고 있어도 양해를 구한 후 가능하다면 물건의 내부까지 꼼꼼하게 살펴보는 게 좋다. 사실 임차인의 입장에서도 임대인이 보장해줄 수 없는 보증금을 내가 대신 갚아줄 수 있는 것이니 되도록 방을 보여주는 게 좋다. 내가 내심 긴장을 했던 것 같다. 다음부터는 꼭 물건 내부도 확인하려는 시도를 해야겠다.
아무튼 그렇게 물건 내부를 확인하는 건 어영부영 넘어갔고, 건물의 외관부터 체크했다.
2015년에 지은 건물이라 낡았다는 느낌은 적었다. 외벽에 갈라진 틈이 있거나 철로 된 부속물들이 심히 부식되었다거나 그런 건 찾지 못했다. 해당 물건의 창문 앞 지면도 잘 마감되어 있었다. 인접한 도로는 대략 1.5 ~ 2차로 너비였으나, 내가 보고 있는 물건은 반지하였기 때문에 주차공간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반지하에 거주하면서 차량을 운용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주변 도로들을 확인해봤는데, 너비가 협소하지만 주차된 차량이 많지 않아서 주차도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는 해당 물건의 특성상 주변 도로들의 주차공간을 기대할 수 없어도 괜찮다는 잠정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해당 물건의 우편함은 깨끗하지도 더럽지도 않은 상태였다. 광고 인쇄물만 1~2장 쌓인 정도였다. 공과금 관련된 문서는 어느 우편함에도 쌓여있지 않았으니까 해당 물건의 공실률은 적다고 기대했다.
건물 내부도 더럽지는 않았다. 현관 앞에도 쓰레기가 없었다. 누가 치우고 있는 걸까? 따로 버리는 곳이 있는 걸까? 악취나 곰팡이 냄새 같은 것도 없었다.
해당 물건의 벽을 따라서 걷다가 도시가스 계량기가 숨겨진 단자를 찾아냈다. 단자를 열어서 각 호실마다 가스가 열렸는지 잠겼는지 봤는데, 모든 호실의 가스가 열려있었다. 따라서 해당 물건의 공실률은 0%였다.
해당 물건을 기준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건물 열 군데 정도의 공실률을 확인해봤다. 대략 열 건물에서 빈 호실로 예상되는 건 두 호실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근처 건물들도 공실률이 상당히 낮으리라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사전에 지도로 확인했던 근처 시장도 봤는데 충분히 활성화되어 있었다. 시장에 판매자와 구매자들이 많았기 때문.
인근 부동산 벽에 붙은 물건 시세들을 확인했다. 사전에 인터넷으로 조사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만약 부동산 벽보지로 시세 정보를 얻기 어려웠다면 직접 부동산에 들어갔을 것이다.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슬쩍슬쩍 관찰했다. 노부부, 공사장 인부, 대학생 혹은 사회초년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주차되어 있는 차량들도 관찰했다. 자동차를 잘 모르지만 대충 훑어보니 뭐가 구형이고 신형인지 정도는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대체로 먼지 쌓인 구형 차종이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1층 주차장이 딸린 허름한 빌라 한 곳에서만 흔히 고급 차량의 이미지로 떠올리는, 그 빌라와는 괴리감이 느껴지는 멋진 차종이 단 한 대 있었다.
나는 그 허름한 빌라에 주차된 고급 외제차와, 외제차 앞에 쌓인 주황색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그림처럼 감상하며 담배를 태웠다. 그렇게 담뱃불이 필터까지 닿는 줄도 모르고 삶에 대한 생각에 잠겨있었다.
20분 ~ 30분에 걸쳐 동네를 살펴본 후에는 땀범벅이 되어서 더욱 지친 몸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라도 살까 고민하다가 또 지출할 택시비가 생각나서 아끼기로 했다. 택시비 지출만 아니었다면 마땅히 5천원짜리 욕망에 응했을 것이다.
첫 도전이라 연습의 느낌으로, 웬만해선 패찰된다는 생각으로 최저가만 낼 생각이다. 그런데 만약 기적적으로 경쟁자가 없어서 당첨된다면 준비된 자에게 행운이 찾아왔다고 여기기로 했다.
2022년 8월 4일 - 입찰
첫 도전에 나서는 초짜라 일부러 일찍 출발했다. 장소는 인천지방법원, 입찰설명 시작이 10시였고 나는 9시 15분쯤 주안역에 도착해서 택시를 탔다. 나는 이때 날짜를 착각해서 수표와 도장을 준비하지 못했다. 당일 새벽에 퇴근하면서 알아차린 바람에 수표와 도장을 준비하고 싶어도 전부 문을 닫는 시간대였다. 게다가 시작이 10시이므로 미리 출발해야 했다.
주안역에서 택시를 타고 남인천농협 학익지점에서 내렸다. 나는 주거래은행이 농협이고, 학익지점은 인천지방법원까지 도보로 5분~7분 거리였다.
그런데 농협이 문을 닫았다. ATM 앞에서 닫힌 문을 보고 기다리시는 할아버지에게 여쭈어보았다. 9시 30분에 오픈이라고 한다. 담배 하나를 태우고서 30분에 농협이 오픈하자마자 들어갔다.
농협은 노년층의 이용률이 높다. 귀가 잘 안 들리시는 분들이 많아서 직원분들도 일부러 목소리를 크게 내신다. 시끄러운 분위기,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보이는 환경에서 나는 직원분께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고 은행직원분께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경매 보증금이 필요해서 자기앞수표 일반권으로 하나 뽑으려고요. 농협 계좌 있습니다."
곧바로 수표가 준비될 줄 알았다. 그런데 통장이 필요하다고 한다.
통장이 없어서... 없으면 안 되냐고 질문하니까 통장이 꼭 필요하다고 하셨다.
"혹시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통장을 본가에 두고 와서요."
만약 다른 방법이 없다면 ATM에서 정액권으로 여러 장을 뽑아가야할 것인데 한 장당 들어가는 수수료가 아까웠다. 시간도 없었고. (정액권은 10만, 100만, 이런 단위별로 뽑는 수표다. 일반권은 내가 원하는 액수.)
다행히도 직원분은 방법을 찾아주셨다. 기존 통장을 처분하고 여기서 새로운 통장을 뽑고, 그것으로 수표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곧장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계좌를 만드는 게 아니라 통장만 다시 만드는 것이다. 통장을 만드는데 2000원이 들어갔고 수표 한 장을 뽑는데 300원이 들어갔다. 다음부터 일반권 수표를 뽑을 때는 동전으로 300원을 준비하자.
대략 15분~20분 걸렸던 것 같다. 나는 수표를 가방에 봉인한 뒤 곧장 인천지방법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법원 내부의 어디로 가야하는지 생각을 못했다.
내가 이용하던 유료사이트에서는 어느 호실에서 입찰이 시작되는지 나와있지 않았다. 혹은 내가 찾지 못했거나.
그래서 대법원경매 사이트에 들어가서 물건번호를 검색했더니 219호라고 나왔다. 법원 정문으로 들어가서 가방과 금속탐지기 검사를 하고 219호 입찰법정을 찾아냈다. 입찰법정 앞 모니터에는 본 물건에 대한 물건 목록과 안내사항 등 다양한 정보가 출력되고 있었다. 10시쯤 입찰법정 내부로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으니 집행관님이 마이크로 여러 안내를 해주셨고 10시 20분에 물건명세서 등 문서를 열람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양옆에 마련된 투표소(?) 같은 공간에 들어가 앉아서 입찰표를 작성했다.
인천지방법원에는 인주, 볼펜, 입찰에 필요한 서류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도장을 준비하지 못해서 일단 지장으로 찍고, 보증금 수표를 봉투에 넣고 마지막으로 큰 봉투를 스테이플러로 찍었다. 그리고 그것을 제출하면서 집행관님께 '도장이 없어서 지장으로 찍었는데 괜찮을까요?'하고 질문하니 괜찮다고 하셨다.
이후 11시 30분까지 쭉 기다렸다. 법무사 명함을 나눠주는 분들이 계셨는데, 그런 활동이 불법이라고 안내문이 적혀있음에도 막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딱히 그분들의 명함을 거절하진 않고 전부 받았다. 어차피 낙찰을 받게 된다면 여러 법무사를 비교해야 하니까.
그런데 인천지방법원에 특이한 아줌마가 한 분 계셨다. 명함을 주고서 계속 대화?를 시도하는 분이었다. 나는 무엇이든 나보다 많이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라면 일단 귀를 기울이는 편인데, 가만히 들어보니까 다른 법무사들을 여러 차례 험담하는 내용이었다. 전부 사기꾼들이며 자기네가 원조라고. 그래서 순식간에 듣기 싫어졌다. 도중에 자리를 피하지 않으면 10분, 20분이고 험담을 계속할 것 같아서 흡연장으로 도망쳤다. 참고로 흡연장은 1층 주차장 앞 계단으로 올라가면 있다. 잘 모르겠으면 출입구를 통제하시는 분들께 여쭤보자. 나도 그랬다. (아무튼 난 특이한 아줌마가 준 명함만 골라서 버렸다. 내게 있어 누군가를 반복적으로 깎아내리는 사람은 기피대상이자 경계대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해당 법무사의 잘못이 크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냥 내 사고회로가 그 명함만 골라서 버리라고 시킨 것 같다. 경계심이 너무 높아져서.)
11시 30분, 개찰 시간이 되자 입찰법정에 사람이 가득했다. 나는 중간쯤에 앉아서 내 물건이 나올 때까지 구경했다. 개찰 순서를 알기 위해, 내가 입찰한 물건이 아니더라도 눈을 크게 뜨고 집행관님의 모든 말씀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와중에 뒤에서 어느 중년부부가 계속 잡담을 하길래 맨 앞자리로 도망치듯 옮겼다. 신성한 법정에서는 기본적인 매너를 지키자.
내가 입찰한 물건은 마지막 순서였다. 입찰자는 나를 포함해 5명이었다. 예상대로 내가 가장 낮은 금액을 쓰고 패찰했다. 낙찰자와의 금액 차이는 400만 원 정도였다. 잠시 기다리고 있다가 눈치껏 앞으로 나가서 보증금을 돌려받았다. 입찰법정의 출입구에는 법무사 명함을 나눠주시는 분들이 있었다.
"낙찰자세요?!"
"아니요ㅋㅋㅜㅜㅜ"
라고 하면서 일단 명함은 전부 받았다.
남인천농협 학익지점으로 돌아가서 대기표를 뽑았더니 몇 시간 전에 수표를 뽑아주셨던 분과 재회하게 되었다. 내가 멋쩍게 웃으면서 이 수표로 다시 입금해달라고 했더니 잘 안 되셨냐면서 직원분도 멋쩍게 웃어주셨다. 뭔가 후련하고 아쉬운 마음이었다.
그래도 값진 경험이 되었다. 직접 입찰을 해보니까 다음부터는 얼타지 않고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무엇을 준비하고, 법원에 가서 어떤 정보를 얻어야하고, 어떤 순서로 경매가 진행되며, 낙찰되었을 때와 패찰되었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경험으로 습득하게 되었다.